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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6호. 2018.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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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소년, 성장하다
[1481호] 2018년 05월 30일 (수) 13:48:45 전북대신문 press@jbnu.ac.kr

 

“바다에 가자.”
그 날 밤 이후 그녀는 극단에 선배 대신 나를 보러 찾아왔다. 올 때마다 잠깐 나를 밖으로 불러내어 우리가 보지 못한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주 사소한 것까지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았다. 나는 그녀의 쫑알거리는 작은 입술이 좋았다. 나에게 자신의 일상을 이렇듯 상세히 공유해주는 존재는 이제껏 없었으므로. 그녀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가만 들어주는 사람이 처음이라면서 종종 들뜬 표정을 했다. 그러한 그녀가 오늘은 갑자기 ‘바다에 가자’며 여타 부타 설명도 없이 내 손을 잡아끌었다.
“아니, 왜 갑자기?”
“가고 싶으니까.”
“난…….”
“가자.”
모든 것을 알면서도 이럴 수가 있나. 그녀는 제법 고집이 센 편이었다. 속으로는 그녀를 원망하며 결국 그 손에 끌려 가까운 바다로 향하는 버스에 탔다.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을 온 마음 가득 새겼던 어느 날 이후 처음으로 가는 바다였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굳어진 내 얼굴과는 반대로 그녀는 생글생글 웃었다. 그리고 내 손을 꼭 잡으며 연신 입술을 움직였다.
“난 아버지가 한 번도 안아준 적 없어. 그렇다고 아버지가 엄마를 안아준 적도 없지. 늘 아버지 품이 그리웠는데, 언제는 아버지가 우리 동네 슈퍼 아줌마랑 만나는 걸 본거야. 어린 마음에 어찌나 충격이었는지. 아버지는 그 아줌마랑 아줌마 딸을 사랑스럽게 보면서 계속 안아주고, 볼에 입 맞추고, 말을 걸었어. 그게 말이 되니. 나는 그렇게 치열하게 요구해도 한 번도 받지 못한 것들이었는데.”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흐르는 눈물을 야무지게 닦으며 말을 이었다.
“난 그 기억이 너무 선명해. 나 아닌 누군가에게 그토록 사랑을 주는 아버지를 본 건, 정말이지 슬펐어.”
아아, 그녀에 비하면 나의 해묵은 상처란 얼마나 어리석은지. 바다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 나는 그녀의 손을 있는 힘껏 쥐었다. 내 손 안에 가득 차는 자그마한 그녀의 손. 곧 도착한 바다에 내려서도 나는 그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의 이야기에 혼이 쏙 빠져 괜찮을 것이라고 내심 생각했지만 막상 바다와 대면하니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의 아버지를 삼킨 바다. 저 바다 어딘가에 내 아버지는 묻혀 있을 것이다. 아버지가 나타나 내 목을 졸랐다. 나를 잊었니? 네 어머니도, 너도, 나를 잊었어?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나를 그녀가 끌어안았다. 내가 조금 진정이 되자 그녀는 나를 끌고 바닷가 근처의 바위에 걸터앉았다.
“이 바다가 너를 키웠잖아. 아버지도 너를 위해 바다에 나섰고. 너를 위해 일하다가 떠나셨으니 너를 원망하실 리 없어. 마음은 조금 아프시겠지. 지금 이렇게 잘 자란 아들을 보지 못하니까.”
그녀의 다정한 말에 나는 자꾸만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아버지의 죽음을 내 탓으로 돌리고 어머니의 새로운 사랑을 외도로 치부했던 소년이 떠올랐다. 그녀는 ‘네 탓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것은 사실일까? 정말 내 탓이 아닌 것일까? 내 피를 타고 흐르는 불안과 공포가 모든 최악의 상상을 현실로 불러낸 것이 아니라는 게?
“너도, 나도 천천히 하나씩 하자. 넌 아무 잘못 안 했어. 그러니까 겁내지 마. 바다는 네 고향이잖아. 그치?”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토닥이는 손을 느꼈다. 비로소 콧속 가득 스며드는 비린내가 느껴졌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아주 서서히, 이곳에 온 내내 불안하게 뛰던 심장이 고요해졌다.
나의 세계에 온 것이었다. 함께 있는 한, 우리는 점점 나아질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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