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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6호. 2018.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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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명인을 만나다-37 오종수 시조창]
죽을 때까지 배우고 또 배워서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고 정경태 선생 사사받은 12가사 배움 끝없어
전국노래자랑 최우수상 수상 등 전국 주목
배움의 기회 더 넓히고파 강의료 받지 않기도
[1482호] 2018년 09월 06일 (목) 17:41:45 전북대신문 press@jbnu.ac.kr

   

 

▲큰 나무 고 정경태 선생과의 만남


전라감영을 지나 다가동의 좁은 골목에 들어선다. 골목의 끝, 몸가짐을 다시금 뒤돌아보게 하는 가지런한 한자로 덮인 건물에 들어서면 고요하면서도 귀에 쏙 들어오는 목소리가 손님을 맞이한다. 전북대신문은 지난 8월, 한여름의 가마솥 더위에도 대한시우회 전주지회 건물을 지키고 있는 시조창 오종수(79) 명인을 만났다.


시조창은 일반인들에겐 다소 생소한 문화 중 하나이다. 시조창의 또다른 이름은 정악이다. 오 명인은 "시조창은 나라애 경사가 있을 때 선비들이 불렀던 음악"이라며 "꾸밈이 없고, 바르며, 평생을 배우고 또 배워도 계속해서 배울 점이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정읍출신인 오 명인은 한문학자인 조부의 영향을 받아 어렸을 때부터 시조를 많이 읽었다. 15살 때 동네에서 한약방을 하던 선생에게 처음 시조를 배웠던 것이 계기가 돼 ‘시조창’의 세계에 입문했다. “어렸을 적부터 한문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나 동네 어른들의 칭찬을 독차지했다”는 그는 “목소리가 우렁차고 발음이 또렷해 정악을 만나는 것은 운명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후 오 명인은 스무살 무렵, 고 석암 정경태 선생을 만나 시조를 처음부터 다시 배웠다. 오 명인은 “스승은 ‘시조창’을 넘어 ‘전통음악’ 나아가 ‘전통문화’ 전반에 큰 그늘을 드리우던 커다란 나무셨다”며 그리워했다.

▲시조창은 바르고 큰 정악(正樂)


오 명인은 매일같이 다가동에 소재 대한시조협회 전주시지부 회관에 간다. “입문한지 65년여가 됐어도 아직 공부할 것이 많다”며 “특히 정악을 이해하기 위해선 계속해서 공부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정악은 고상하고 바르고 큰 음악이란 말로 궁중음악일부를 포함해 민간 상류층에서 연주돼 오던 모든 음악을 말한다. 판소리나 민요처럼 감정이 절절하게 한스럽지도, 흥에 겨워 들썩이지도 않는다. 오 명인은 “그렇다고 시조창이 단순하다고 볼 수 없다”며 “순수한 듯 청아하게 단전 깊은 곳에서 뽑아내는 소리에는 고요함과 움직임이 같이 공존한다”고 설명했다.


“시조창은 고려 인종 때부터 시작했으니 역사로 따지면 800년 이상 된 우리 민족 사상과 정신세계를 표현하고 실천해온 진정한 문화유산이다. 시조창만큼 멋스런 가락도 없다”는 오명인은 “문학과 음악이 만나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든 가슴의 언어이다. 정가(正歌), 정악(正樂)인 시조창이 세계무형문화재에 포함되는 부분도 앞으로 해야 할 일이다”고 말했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그는 “시조창을 하다보면 호흡이 길어진다. 단전 깊숙한 곳에서부터 끌어올린 소리를 길게 끌고 갈수 있는 공력이 쌓여 심폐기능 또한 좋아진다. 또한 그 태도에 있어 인간 내면에 절제를 심어주고 정제된 정신으로 순화시키는 기능이 있는 음악이니 치매걱정은 않해도 된다”며 시조창을 전수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끼’를 전국에 알리다


고 정경태 선생의 사사를 받아 한층 더 시조창에 열중하게 된 오 명인은 삶이 고달프고 힘든 순간에도 시조 읊기를 멈추지 않았다. 특히 고 정경태 선생이 전국 각지에서 익힌 시조를 한데 모으고 엮은 12가사를 익히고 알리려는 노래를 매일 불렀다.


그런한 제자의 시조창 사랑이 스승애게 전해졌던 것일까. 오 명인은 고 정경태 선생으로부터 직접 후계자 ‘인증장’을 수여 받았다. 40여명에 이르는 전국 각지 제자들 중 오 명인만이 유일하게 인증장을 받았다.

오 명인은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가르쳐 후학을 양성하라는 스승의 의지를 느꼈다”고 회상했다.


그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전국시조경창대회에서 1978년 을부장원을 받은 때부터였다. 이후 갑부, 특부, 명인부, 명창부, 국창부, 대상부에서 장원의 영광으로 그 명성을 더욱 높여갔다. 오 명인의 끼는 대회에서 그치지 않고 안방극장에도 울려퍼졌다. 전국노래자랑이 처음으로 방영하던 해에 츌연하게 된 오 명인은 시조창으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후학양성으로 정악 보존 꿈꿔


오 명인의 후학양성에 몇신년 동안의 공을 들이고 있다. 오 명인은 “한문에 대한 이해, 타고나야 하는 목소리 등 시조창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하지만 시조창은 인륜, 충효 등의 내용을 주로하고 있어 이를 부르고 익히면 건전한 인격형성과 정서함양에도 도움을 준다”고 덧붙였다.


정가를 발전시킬 훌륭한 제자들을 찾고 있다는 오 명인은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마음적·시간적 여유가 생겨 더욱 연습에 매진 할 수 있다”며 “어려운 환경에 시조창의 맥을 이어나갈 사람이 드물다. 후배들이 대학·대학원을 나와 꾸준하게 연습할 수 있도록 자비라도 털어 환경조성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오 명인은 배울 의지가 있는 후학이 찾아오면 마다하지 않고 늘 받아주고 있다. “한 번은 얼마 없는 형편에 어렵게 돈을 구하고선 가르침을 청하던 이가 있었다”는 그는 “더 널리 정악을 알리고,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생활의 어려움으로 그만두는 일이 없도록 정중히 돈을 거절했다”며 일화를 전했다.


회관의 한쪽 면에는 제자들이 여러 대회에서 수상한 상장들이 빼곡히 걸려 있다. 오 명인은 자신이 배출한 많은 제자 대다수가 대한시우회 각 지부의 회장겸 사범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그중에서도 2007년 전국 시조 합창 경연대회 사진을 가장 뿌듯해했다. 이 상이 남다른 이유는 아마추어 제자들이 전국대회에서 무려 금상을 받았기 때문이란다. “대회에 나가는 십 수 명에게 강의료도 안 받고 오히려 여비를 줘가며 가르쳤던 시간”이었다는 그는 “시조창이 일반인들에게 더 많이 알려질 수 있도록 공헌한 것 같아 뿌듯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 외의 상들은 거의 시조창에 뜻을 품고 평생을 배워온 제자들의 상”이라며 웃었다.

   

 

▲도전하는 삶 꿈꾸길


명인은 대학생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며 양사언의 평시조 ‘태산이 높다하되’를 멋들어지게 불러주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하더라"

멋들어지게 시조를 부른 오 명인은 “이 시조가 말하는 것은 결코 노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많은 젊은 친구들이 좌절하고 절망하고 있다.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이에게 노력을 강요하는 것은 결코 안 될 일이다”고 운을 뗀 뒤, “그러나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끝까지 노력하라는 것이 아니라, 도전 해봐야만 할 수 있는지 없는 지의 여부를 알 수 있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고동우 객원기자
go_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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