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명인을 만나다-38 가야금 산조 지성자 명인] “가야금과 함께 평생 호흡하고 싶어요” - 전북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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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7호. 2018.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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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명인을 만나다-38 가야금 산조 지성자 명인] “가야금과 함께 평생 호흡하고 싶어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음악적 재능 꽃 피워
해외 공연서 겪은 언어차이…음악으로 극복
제자를 육성하며 국악인의 길 정진할 것
[1483호] 2018년 09월 13일 (목) 17:45:55 전북대신문 press@jbnu.ac.kr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는가. 꿈을 향해 발을 딛는 것이 두려운가.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전북대신문이 다양한 분야의 멘토들을 만나봤다. 자신이 정한 길에 한 치의 의심도 품지 않고 담담히 역량을 키워나가 결국은 ‘명인’의 칭호를 얻은 사람들이 바로 그 주인공. 전북대신문에서 그들의 삶과 열정을 전하려 한다. <엮은이 밝힘>

수십 년간 가야금 위를 누비던 손이 다시 바쁘게 움직인다. 한 줄씩 차례로 퉁기며 소리가 이어지더니 모인 소리는 가락이 돼 곳곳으로 퍼져나간다. 가야금 선율에 노래가 입혀지며 힘은 더 강해진다.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주, 그중에서도 한국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한옥마을에는 가야금 산조의 명맥을 잇고 있는 지성자(73) 명인의 성금연가락보존회가 있다.

▲소리와 함께 한 유년시절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소리에 젖어있었어요. 어머니와 아버지의 음악을 보고 들으며 자연스럽게 음악인의 길을 걷게 됐죠.”


지 명인은 민속악의 대가로 불리는 아버지 지영희와 가야금 산조를 창제한 어머니 성금연 밑에서 자라며 태교도 소리로 했다. 어릴 때는 손이 작아 가야금 등 악기를 배우지 못하고 춤이나 소리를 먼저 배웠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무대에 오르는 것을 좋아했다. 지 명인은 8살 때부터 많은 공연과 연주회를 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슴 깊이 남아있는 기억이 있다. 6‧25전쟁 발발 당시 피난을 떠나던 지 명인의 대가족은 10명이 넘어 묵을 곳이 마땅찮았다. 뭐라도 해야겠다던 아버지가 마을 한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구경하던 마을 주민들은 음색에 반해 선뜻 방을 내줬다. 이후로 아버지와 사촌언니, 작은 아버지 등 식구 대대로 피난길을 떠돌며 공연을 했다. 가족음악단이 된 셈이었다.

▲가야금과 함께 호흡하다
가야금 산조란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기악독주곡을 말한다. 성금연제 가야금 산조는 농현이 많아 가락이 특히 어렵기로 유명하다. 산조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를 따라 가야금 줄을 퉁기며 어머니의 뒤를 잇게 됐다.


지 명인에게 가야금은 신체의 일부이자 삶 자체이다. 배우고 손에 익히는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외로운 날 가야금은 그녀에게 벗이 돼주었고 나태한 삶에는 선생이 되기도 했다. 지 명인에게 가야금은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것이다.


가야금은 선율 악기이면서 타악선이다. 한 줄을 손으로 뜯는 순간, 음은 사라진다. 음이 짧기 때문에 호흡에 맞춰 연주를 해야 한다. 빈 공간을 호흡으로 매우면 우리가 평소 듣던 가야금 선율이 완성된다. 이 과정은 수많은 연습을 통해 가능하다.

▲음악으로 극복한 언어의 차이
“언어가 통하지 않는 먼 이국땅에서도 국악으로 소통합니다. 관객들과 음악을 매개로 소통하고 같은 예술가를 만나 무대에서 교류할 때 가장 설레고 기뻐요.”


지 명인은 매 공연 최선을 다한다. 국내 공연은 물론 해외에서도 국악을 알리기 위해 공연을 지속하고 있다. 해외 공연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단연 언어였다. 언어가 통하지 않았기에 겪는 불편은 상상을 초월했다. 공연을 하는 동안 묵었던 숙소에서조차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수건 한 장 받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무대만큼은 달랐다. 언어의 차이를 느낄 새가 없었다. 국악이라는 매개로 지 명인과 관객은 호흡을 주고받으며 소통했고 어느새 공연은 끝에 닿아 있었다.


평생 국악을 하며 숱하게 오른 무대 중에서도 지 명인은 중학교 재학 시절 참가한 프랑스 민속예술제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당시 부모님을 비롯해 가야금 병창 박귀희와 한국 무용의 대가 김백봉 등 국악계의 거목들과 한 무대에 올랐다. 그중에서도 지 명인은 가장 막내였다. 까마득히 높은 선배들과 같은 무대에 오를 것을 생각하니 무척 긴장이 됐다. 막상 연주가 시작되자 우리 음악을 오감으로 느끼는 관객들을 보며 푹 빠져 들어 공연을 즐겼다.
   

▲물려받은 음악을 전파하다
지 명인은 어머니이자 스승인 성금연의 음악을 간직하고 후대에 물려주고자 했다. 그녀는 “일반적으로 쓰이는 12현 가야금으로는 내기 힘든 소리가 있는데, 어머니께서 밑에서 한 줄, 위에서 두 줄을 추가해 15현 가야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지 명인은 “연주자로서 악기를 개량해서 곡을 만드는 것만큼 큰 영광은 없다”며 “15현 가야금으로 만든 곡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성금연가락보존회를 구성했다”라고 전했다.


가락들을 구음 그대로 익혀 온 지 명인에게 악보란 참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음악, 성금연제 가야금산조와 15현 가야금 창작곡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악보 정리는 필수였다. 우선 연주를 녹음 한 뒤 반복해서 들으며 정리했다. 낯설고 힘든 작업이었지만 지 명인은 그 작업을 묵묵히 홀로 이어갔다. 그렇게 그녀는 산조를 중심으로 춘몽, 흥, 향수, 살풀이, 눈물의 진주 등의 음악을 악보화 했다.

▲7음계 아닌 5음계로 교육
“음악이란 글이나 악보로써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소리는 소리로 전달해야 본연의 뜻 그대로를 느낄 수 있다.”


지난 1986년 아버지의 연구를 ‘지영희 민속 음악 연구자료집’으로 정리하고 어머니의 창작곡을 악보로 정리한 지 명인이지만 소리를 배우기 위해서는 악보가 아닌 귀로 듣고 눈으로 보며 손으로 직접 해봐야한다고 강조한다. “현재는 악보라는 매개체를 통해 소리를 배워요. 이는 피아노의 7음계에 맞춘 것으로 전통적인 우리나라의 5음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청각을 이용해 몸으로 소리를 느끼며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 명인은 우리학교를 비롯해 서울대, 목원대, 중앙대 등의 강의에서 악보 없이 국악에서 쓰는 5음계의 구음으로 곡을 가르친다.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것에 익숙한 학생들은 지 명인의 강의를 초반에는 어려워한다. 하지만 방식에 익숙해지면 어느 누구보다, 어떤 수업 방식에서보다 곡들을 잘 소화한다. 그녀는 그 모습에 늘 보람을 느낀다.


제자들이 훌륭한 연주자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함께 국악의 길로 정진할 것이라는 지 명인. 그녀가 지켜온 국악이 전 세계의 심금을 울리는 날이 오길 바란다.


임다연 기자 imdayeon@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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