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희청년소설문학상 대학부 당선작 - 전북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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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7호. 2018.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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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희청년소설문학상 대학부 당선작
배터리가 약한 차의 시동을 거는 방법
[1486호] 2018년 10월 16일 (화) 19:06:44 전북대신문 press@jbnu.ac.kr
최명희청년소설문학상 대학부 당선작

배터리가 약한 차의 시동을 거는 방법

홍성욱 / 명지대 문창 1

   

1. 밤에 전조등이 꺼졌을 때
깜깜한 밤에 갑자기 전조등이 꺼졌을 경우에는 라이트의 스위치를 켜 둔 채로 라이트 렌즈 위를 탁탁 때려본다. 이렇게 하면 끊어졌던 필라멘트가 다시 붙기 때문에 50%정도는 제대로 돌아온다. 라이트 속에 작은 전구가 들어있는 경우에는 상향등과 하향등의 필라멘트가 따로 있으므로 상향으로 켠 후 라이트의 윗부분에 고무테이프나 종이를 붙여서 빛을 차단하도록 한다.

누나가 사라지기 전에 같이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바닷가였는데 가는 길에 산이 많아서 길이 험했다. 결국 원래 예정되었던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고 밤이 되자 산 중턱에서 차를 세우고 쉬었다 가기로 했다.
그리 높은 산은 아니었지만 내려서 보니 밑의 야경이 다 보여서 경치가 좋았다. 여름이었지만 밤에 산 위에서 있으니 바람이 많이 불어 쌀쌀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차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출발하려고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시동은 걸리는데 자동차 등이 켜지지 않았던 것이다. 누나가 어떻게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전에 본 적이 있는 한 남자가 갑자기 차창 밖에 나타났다. 누나는 흠칫 놀라더니 못 본 척을 했다. 남자는 닫힌 창에 고개를 박고 계속 뭐라고 말했는데 누나는 못 들은 척을 하다가 고개를 들고는 남자를 향해 뭐라고 소리를 질렀다. 남자는 실실 웃다가 잠시 후 돌아갔고 누나는 한참 동안 핸들에 얼굴을 묻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
그때 누나가 울고 있었을까. 나는 알지 못한다. 그때도 알지 못했고, 앞으로도 아마 그럴 거다. 기억은 점점 희미해지고, 나는 몇몇 장면을 잘못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 어딘가에 혹시 말더듬이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을까? 말을 더듬는다는 건 내겐 좋은 징조다. 어쨌든 말을 할 수 있다는 거니까. 그래도 무섭다. 내가 진짜로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닌데, 나는 그걸 알 수가 없는데 사람들이 혹시 나를 동정해서 그래 말 잘하네,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조금 슬플 것 같지 않나.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해봤자 변하는 건 별로 없고, 나는 여전히 손의 움직임과 얼굴표정과 몸짓을 이용해서 사람들과 대화를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한 채 지나간다.
누나는 오른쪽 다리를 조금 절었는데 운전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누나를 생각할 때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많다. 두 달 간격으로 내가 잘라주던 긴 머리카락, 걸을 때마다 불규칙하게 울리던 바닥의 진동, 엄마 사진을 보면서 소리 없이 울던 얼굴, 그리고 나와 마주앉아서 서로 대화하던 수많은 모습들....... 확실히 대화를 많이 했었다. 나는 누나하고만 대화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너랑 얘기하고 있으면, 가끔 누가 벙어리인지 잊어버릴 때가 있어.
누나는 종종 그렇게 얘기했었다. 낡은 옛날 책으로 배운 누나의 수화는 많이 어설펐지만 나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누구도 불편하지는 않았다. 가끔 서로 똑같은 말을 하는데 손짓이 틀려서 내가 맞다, 네가 틀리다 이러면서 다툰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오래전에 사 놓아서 누렇게 변한 ‘수화의 이해와 실제’라는 책을 펼쳐놓고 누가 맞는지 확인했다. 맞는 건 항상 누나 쪽이었고 그럴 때마다 누나는 뭐라고 하면서 내 뒤통수를 때렸다. 수화로 하지 않은 말이었지만 별로 궁금하진 않았다. 이것도 모르냐, 이 바보야. 아마 이런 말이었겠지.
나도 누나랑 비슷한 기분을 느낀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러니까 아무도 없는 좁은 방 안에서 둘이 마주 앉아 손짓을 하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입으로 내뱉는 말 같은 건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누나는 처음 나와 대화할 때는 입을 벙긋거리며 말을 하면서 손짓을 했는데 얼마 지나고 나서는 입을 다물게 되었다. 귀찮다는 이유에서였는데 그랬기 때문에 누나가 좀 더 나랑 비슷해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나는 집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창고에서 물건 포장하는 일을 했다. 아버지의 친구가 운영하던 곳이었는데 시간이 좀 지난 뒤에는 사장이 바뀌었다. 그래도 나는 계속 일할 수가 있었다. 주중에는 거의 나 혼자 일했기 때문에 등을 두드리는 사람도 없었다. 전통 방식으로 만든 네모난 그릇을 포장하는 일이었는데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먼저 그릇을 닦고 깨진 곳이 없나 살피고, 한지를 펼친 다음 그 위에 그릇을 놓고, 잘 접은 다음 줄로 묶어서 상자에 넣으면 됐다. 단순작업의 반복이라서 하다보면 속도가 붙었고 시간이 빨리 가서 좋았다. 평일 아침 열 시에 출근해서 저녁 여섯 시에 퇴근했고 주말은 나가지 않았다. 일당 4만원을 받았고 점심은 거기서 도시락 같은 걸 줘서 먹었다. 딱히 누가 살 것 같지도 않은데 매일 새로 들어오는 그릇들은 셀 수가 없을 정도였고, 그것들을 다 포장하고 나면 시계는 어느새 퇴근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포장된 박스들로 가득 찬 창고 문을 닫고 나오면 거리는 퇴근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는 주로 버스를 타고 왔다 갔다 했는데 아침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집에 갈 때는 버스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멀리 돌아가는 텅 빈 버스를 골라서 탔는데 환승을 여러 번 해야 했지만 오래전에 어딘가에서 받은 장애인 복지카트 덕분에 교통비가 무료라서 괜찮았다. 집에 가서는 별로 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별 상관은 없었다.
누나는 새벽 여섯 시부터 오후 네 시 반까지 편의점 알바를 했다. 집에 도착하면 우리는 같이 편의점에서 가져온 도시락을 먹었다. 몰래 가져온 건 아니었고, 야간알바 하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유통기한 지난 걸 가지고 온 거라고 했다. 밥을 먹으면서는 주로 누나가 얘기를 했고 나는 가끔 고개를 끄덕거리기만 했다.
나보다 두 살 어린 남자앤데, 먹을 때 조심하라는 거야. 자기 친구가 예전에 편의점 도시락 먹고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맹장염이었데.
주로 이런 얘기였는데 손짓으로 얘기했기 때문에 계란말이 같은 걸 입에 집어넣고 씹으며 얘기해도 입 밖으로 튀지 않았다. 누나는 돈가스 정식을 제일 좋아했고 나는 제육덮밥을 좋아했다. 하지만 남는 도시락은 보통 6찬 도시락 같은 것들이었다.
밥을 다 먹고 나서 우리는 손짓으로 대화를 했고 그게 끝나면 누나는 책상에 앉아 글을 썼다. 소설을 쓴다고 했는데 가끔은 쓰다가 울기도 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글을 써야 되는 거야.
이렇게 얘기하면서도 내게 보여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공모전 같은 곳에 몇 번 보낸 적이 있었지만 당선이 된 적은 없었다. 누나는 거기에 별로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 것 같았지만 언젠가는 꼭 작가가 될 거라고 했고 그때마다 나는 만약 그렇게 된다면 누나가 쓴 글을 볼 수 있을까 생각했다.
주말에는 우리 둘 다 일을 나가지 않았다. 하루 종일 집에 누워 있거나 아니면 사람 없는 가까운 곳으로 산책을 나가기도 했다. 집에 있을 땐 누나는 주로 노래를 들었다. 프로그레시브 록이라는 걸 좋아했는데 그게 뭔지 나는 당연히 알 수 없었다. 누나는 노래를 들을 때면 가끔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곤 했다. 박자를 타는 거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조금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하지만 나중엔 나도 같이 누나를 따라서 몸을 움직였고 가끔 서로를 보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귀가 안 들리면 사방이 조용하니까 좋긴 한데, 음악을 못 듣는다는 거 하나는 진짜 짜증나는 일이야. 그렇지 않아?
누나는 가끔 자기가 듣는 노래가 뭔지 열심히 설명하다가 지칠 때면 이렇게 얘기했다.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 가끔 많이 슬퍼졌기 때문에, 누나가 노래를 설명할 때 웬만하면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열심히 끄덕거렸고 그러면 누나는 좋아했다. 우리 둘은 그런 사이였다.


   

2.기어가 빠지지 않을 때
비탈길에 주차했다가 차를 발차시키려고 할 때 기어가 잘 빠지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는 사람의 힘으로 자동차를 앞뒤로 밀면서 움직이면 기어가 움직이게 된다.

아버지는 자동차 수리하는 일을 아주 오랫동안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부터 계속 같은 동네에서 살았는데, 근처에 있던 카센터에서 처음에는 온갖 허드렛일을 하다가 보고 들은 경력이 쌓이면서 주인이 다른 동네로 떠나고 난 후에는 그곳을 자신의 소유로 만든 경우였다. 하루는 거기서 귀티나 보이는 여자 손님이 몰고 온 외제차를 수리해 준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차를 수리하면서 그 여자에게 계속 말을 걸었고 여자는 귀찮아했다. 꽤 길고 지루한 대화 끝에 아버지는 여자가 잘나가는 세일즈우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여자는 그래도 아버지에게 조금은 관심이 생겼다. 둘은 얼마 가지 않아 결혼했고 여자는 너와 나를 낳았다, 라고 누나는 내게 얘기했지만 솔직히 잘 납득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첫째로 아버지가 그렇게 능력 있는 사람과 결혼할 만큼의 무언가가 있는지가 의문이었고 둘째로 그 여자가 잘나가는 세일즈우먼이었다면 왜 우리는 가난하게 사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여자, 그러니까 내 어머니는 나를 낳고 나서 닷새 후에 죽었는데 그날은 누나의 여섯 번째 생일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신이 집에서 열심히 가르친 것은 아니고 그냥 밥만 주며 방치해둔 셈이었다. 그래서 나는 초등학생인 누나가 하는 짓을 뭔지도 모른 채로 따라했고 누나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쯤에는 글자를 어느 정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좀 더 자란 뒤에는 누나가 내게 수화를 가르쳤다. 한번은 입으로 말하는 걸 가르치려고 해본 적이 있었는데 내가 하는 걸 몇 번 보더니 그만두었다. 아버지는 종종 우리가 손짓으로 대화하는 걸 물끄러미 쳐다볼 때가 있었는데 그런 날이면 항상 밤늦게까지 잠자리에 들지 않고 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처음엔 무슨 생각을 하느라 저렇게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 있나 싶었지만 나중에 보니 아버지는 집에 쌓여 있던 볼트와 너트를 조립하고 있었다. 딱히 쓸 일이 없는데도 그랬다. 너트의 구멍에 볼트를 끼우고 손목을 돌려 안쪽으로 조금씩 밀어 넣었다. 다음 날 아침이면 조립된 것들이 방 한쪽 구석에 수북했고 나는 그걸 다시 빼는 일로 하루를 보냈다. 시키지 않았는데도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일하고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내가 다시 정리해놓은 그것들을 무심하게 쳐다보고 지나갈 뿐이었지만 그것으로 나는 안심이 되었다. 말하자면 그 조립하는 행위가 아버지에겐 어떠한 감정을 표현하는 행위였던 것이다. 그 감정이 슬픔이든 분노든 아버지는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걸 어색해했는데 그 행위 속에 죄책감 역시 숨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뿐이었고 내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런 아버지는 당연히 수화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입모양을 보고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낼 수밖에 없었다.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지만 아버지가 없을 때 누나와 연습을 해서 어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양쪽 손바닥으로 내 얼굴 양옆을 잡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얘기했는데, 무서웠지만 입모양을 자세히 볼 수 있는 점은 좋았다. 한자 한자 또박또박 발음해주는 것도 일종의 배려 같았다.
남.자.는.운.전.을.할.줄.알.아.야.하.는.거.야.
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리 쓸모 있는 얘기를 하는 편은 아니었다. 운전에 관한 것도 그랬다. 아버지는 누나에게 운전을 가르치는 걸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낡은 소형차에 앉은 채로 나는 하루 종일 지루한 가르침을 들어야 했다. 들인 시간에 비해 성과는 없었고, 아버지는 답답해하면서 내 얼굴을 붙잡은 손에 힘을 더 꽉 주곤 했다. 내겐 운전 같은 게 필요 없을 거라는 걸 분명히 알 텐데도 아버지는 정말 필사적으로 내게 운전을 가르치려고 했는데, 아마 그건 자신이 줄 수 있는 게 그런 것들뿐이라서 그랬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몇 달 동안 배운 걸로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겨우 시동 거는 것뿐이었다.
이.걸.가.지.고.다.녀.누.나.한.테.도.움.이.라.도.돼.라.
가르치는 걸 거의 포기했을 무렵 아버지는 노란 종이에 프린트해 온 것을 내밀며 내게 말했다. 자동차가 고장 났을 때 수리하는 방법을 적어 놓은 것이었다.
잃.어.버.릴.지.도.모.르.니.까.외.워.
아버지는 운전을 가르치는 대신 그걸 외워서 쓰게 시켰다. 총 다섯 가지였는데 각각의 경우마다 번호가 붙어 있었고 종이 한 장을 빼곡하게 채울 만한 분량이라서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매일 밤에 아버지가 퇴근해서 집에 오면 시험을 봤고 하나 틀릴 때마다 손바닥을 열 대씩 맞았다. 누나는 처음에는 말렸지만 나중엔 그냥 포기한 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보고만 있었고, 나는 맞지 않기 위해서 하루 종일 그 종이에 적힌 것들을 옮겨 적었다. 결국 한 달 만에 다 외웠고 그때만큼은 아버지도 좋아했다.
그해 겨울에 아버지는 죽었다. 누나 얘기로는 밤에 카센터에 두고 온 것이 있어 잠시 나갔었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까지 돌아오지 않았고, 둘이 같이 가보니 그곳에는 잿더미만 남아 있었다. 누나는 아마 차고 안에 있던 자동차 엔진에 불이 붙었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그곳에 불을 붙이고 도망친 거라고 믿고 싶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더 이상 자신이 우리 둘에게 줄 것이 없다는 걸 깨달았을 거라고, 겨우 그 노란 종이 한 장으로 자신의 인생이 설명된다는 걸 깨닫고 절망에 빠져 도망친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는 잠시 거기 가만히 서서 까맣게 변해버린, 그동안 우리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곳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주변 가게들이 다 폐업해서 사람이 없던 곳이었던 점은 다행이었다. 잿더미 위로 눈이 쌓이기 시작할 때쯤에 우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담담한 표정이었던 누나와 달리 나는 울었다. 누나가 나를 빤히 바라보는 표정이 뭐가 그렇게 슬프냐고, 좋은 기억 따윈 없는 아버지가 사라진 게 뭐 그리 아쉬운 거냐고 말하는 것 같아서 무서웠다. 그래서 더욱 울었다.
누나는 그 뒤로 CD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아마 그때부터 노래 듣는 걸 좋아했던 것 같다. 집 안을 가득 매우고 있던 자동차 부품들, 볼트, 너트, 망치 같은 것들을 치우고 음악 앨범들로 그 자리를 다시 채웠다. 작은 스피커 하나를 사서 집에 원래 있던 오래된 CD 플레이어에 연결해 노래를 들었다. 아버지가 없으니 담배도 마음껏 피웠다. 몇 번은 남자친구를 데리고 온 적도 있었다. 주로 내가 없는 시간에 그랬지만 나는 아무 곳에나 버려진 담배꽁초, 싱크대에 떠 있는 컵 두 개, 대충 개켜진 이불 같은 것들을 통해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남기고 간 그 노란색 종이에 적힌 정보들을 사용할 일은 없었다. 물론 누나랑 집에 있던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몇 번 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누나는 면허증이 없었기 때문에 멀리까지 나가지 못했고, 그저 동네만 몇 바퀴 돌다가 돌아왔기 때문에 고장 날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누나의 서툰 운전 실력 때문에 차가 가로수에 처박혀 형편없이 찌그러져 폐차장에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 종이는 쓸모없게 되었지만 난 그걸 계속 가지고 다녔다. 비록 별 볼일 없긴 했지만 아버지 일생의 전부가 그 종이 안에 들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딱히 아버지를 존경하거나 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고 그냥 그런 가벼움이 좋았다. 인생 전체를 종이 한 장에 요약해서 집어넣을 수 있다는 그 가벼움이, 왠지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하지만 그 종이는 지금 내게 없다. 언제 어디서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거기에 무슨 내용이 적혀있었는지도 이젠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나에게 가끔 그 종이 얘기를 하면 누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몰라. 줄줄이 외웠던 건 넌데 네가 모르면 내가 어떻게 기억해? 분명 쓸모없는 내용이었을 거야. 아빠가 쓴 거라면 뻔하지, 뭐.


3.퓨즈가 끊어지면 은박지로 대신한다.
와이퍼, 라이트, 히터 등 전기의 힘으로 움직이는 부분이 갑자기 움직이지 않을 때에는 퓨즈의 이상을 살핀다. 퓨즈가 끊어졌을 경우, 예비퓨즈마저 없다면 사용하지 않는 회로의 퓨즈를 빼서 임시로 사용한다. 이렇게 할 수 없을 때는 담뱃갑 속의 은박지가 겉으로 나오고 종이 부분이 안으로 들어가도록 접어서 사용한다.

나는 누나가 피우는 담배 이름이 뭔지 몰랐다. 집에 있을 때는 거의 삼십 분 간격으로 담배를 피워댔지만 주로 화장실 문을 잠근 채로 피웠기 때문이다. 항상 담뱃갑과 라이터를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어쩌다 까먹고 탁자 위에 놓아둔 것을 집어서 살펴보려고 한 적이 있었는데, 누나는 그걸 발견하고 나서 즉시 빼앗고는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화를 냈다. 몸에 무지 나쁜 거라고, 너는 절대로 피우면 안 된다고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그럼 누나는 대체 왜 피우는 거냐고 물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가끔 화장실 변기가 막혀서 냄새가 날 때면 밖으로 나가서 피웠는데, 한번은 문 앞에서 집주인이 누나와 무언가 얘기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그는 팔짱을 낀 채로 거들먹거리며 말하고 있었고 누나는 조금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담배만 뻑뻑 피워댔다. 그걸 보고도 딱히 화를 내지 않는 걸로 봐서 담배 피우는 것 때문에 뭐라고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담배를 땅바닥에 비벼 끄고 들어오는 누나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별 것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점점 늘어나는 집주인과의 대화 횟수에 비례해서 누나가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횟수도 많아졌다. 배가 고파 물을 자주 마셔서 오줌이 마려워 그런 거라고 했지만 나는 믿지 않았다.
하루는 버스가 평소보다 막혀 늦게 집에 와 보니 누나가 방 한가운데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는 누나가 먼저 밥을 먹었나보다 하고 생각한 뒤 남은 도시락을 찾아봤지만 없었다. 내가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누나는 나를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손짓으로 말했다.
사장한테 걸렸어. 유통기한 지난 것도 가져가면 안 된데. 그리고 나 다리 저는 것도 들켜서, 얼마 못 가서 잘릴 것 같아.
나는 그때 조금 놀랐는데, 얘기할 때 누나의 표정이 생각보다 담담해서만은 아니었고 지금까지 누나가 다리 저는 걸 사장에게 숨겨왔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 더 컸다. 누나는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손으로 가위 모양을 만들어서 머리카락 자르는 흉내를 냈다. 그러고 보니 벌써 두 달이 지나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서랍 쪽으로 가서 가위를 꺼내 왔다.
앞머리를 자를 때 누나는 눈을 감았다. 눈썹 위가 보이지 않게 조심했는데 자를 때마다 가위를 쥔 손에 뭉툭한 느낌이 느껴졌다. 그 느낌이 좋아서 머리카락 자르는 날을 내심 기다린 적도 있었는데 요즘은 줄곧 잊은 채로 지내왔다. 잠시 후에는 뒤로 돌아서 뒷머리를 잘랐다. 누나는 머리카락이 아주 길어서 허리까지 내려왔다. 나는 항상 엄지와 약지를 크게 벌린 한 뼘 정도의 길이를 잘랐는데 누나가 그 정도가 적당하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먼저 빗으로 머리를 한 번 빗고 가위로 자르려고 하는 순간 누나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원래 잘라야할 길이보다 두 배는 가까이 뭉텅 잘려버렸는데, 누나는 거기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채로 아예 내 쪽으로 돌아앉고는 애기했다.
오늘 집 앞에서 집주인을 만났어. 원래 나와 있을 시간이 아닌데, 술 먹고 머리가 좀 돌았나봐. 혀 꼬인 목소리로 말하더라. 내가 예쁘데.
누나는 뭔가 짜증난다는 듯한 표정이었는데 손짓이 끝나고 나서는 입모양으로 뭐라고 말했다. 누나는 내게 얘기하다가 욕이 나올 때 주로 그랬는데 그래서 누나가 뭐라고 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미친 새끼.
그리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사방이 어두워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홉 시 정도 됐던 것 같았는데 바깥이 깜깜해지기에는 충분한 시각이었다. 낡은 집이었지만 그동안 정전이 됐던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많이 당황했다. 한참이 지나도 암순응은 오지 않았고 숨쉬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느껴지는 거라고는 냄새뿐이었다. 환기를 한 지 오래돼서 퀴퀴한 방 냄새, 그리고 아까 전까지 마주보고 있었던 누나의 머리카락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났다.
누나는 어디 있지?
나는 팔을 뻗고 천천히 좌우로 움직이면서 잡히는 게 있는지 확인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조금 몸을 움직이면서 팔을 휘둘러봤지만 손에 걸리는 건 방금까지 들고 있던 가위와 뭔지 알 수 없는 크고 작은 물건들뿐이었다. 주변에 그런 것들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될수록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양초 같은 걸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게 우리 집에 있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나는 내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이제는 일어나서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누나를 찾았다. 그러다가 무언가에 걸려서 넘어졌는데 바닥에 부딪힌 뺨이 차가웠다. 더 이상은 움직일 힘도 없고 움직인다고 해서 뭐가 될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냥 나무 바닥 냄새를 맡으면서 가만히 누워 있기로 했다. 눈을 감았고 어느 순간 잠든 것 같았는데 눈을 다시 떠보니 천장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일어나서 어질러진 주변을 둘러보다가 한쪽 구석에 누나가 쪼그려 앉아 있는 걸 보았다. 누나는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무릎에 얼굴을 박은 채로 있었는데 내가 다가가자 고개를 들었다. 누나는 울고 있었다. 숨죽여 흐느끼는 것도 아니고 엉엉 울고 있었는데 얼굴을 무릎에 묻은 채라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어깨에 손을 올리자 누나는 뿌리치고 나서 내게 뭐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는 계속 울면서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으려고 했다. 나는 누나를 좀 더 달래보려다가 별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닫고 밖으로 나갔다.
동네 전체가 정전되었던 건 아닌 것 같았다. 바깥에 나와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구경하고 다시 들어가려다가 집주인을 만났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뭐라고 말했지만 너무 빨리 말해서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조금 화가 난 표정으로 다시 말하고 가버렸는데 내가 알아들을 수 있었던 말은 내일, 돈, 집세 같은 단어 정도였고 그보다는 말할 때마다 주름이 생기는 그의 얼굴이 더 눈에 띄었다. 나는 그 얼굴이 술 취했을 땐 어떻게 바뀔지를 상상했고, 그 바뀐 얼굴로 누나에게 예쁘다고 말하는 장면을 잠시 상상했다. 집으로 들어가 보니 누나는 이미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은 채로 누워 있었다. 나도 그 옆에 이불을 깐 뒤 불을 끄고 누웠다. 나는 누나가 대체 내게 왜 그랬던 것인지에 대한 것보다는 내일도 누나가 기분이 안 풀리면 어떡하나 하는 고민 때문에 잠을 설쳤다. 하지만 다음 날 누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밝은 표정이었고, 집 앞에서 각자의 일터로 갈 때는 활짝 웃으면서 손까지 흔들어 주었기 때문에 나는 전날 일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평소보다 늦게 집에 돌아온 누나는 내게 여행을 가자고 했다.


   

4.스위치를 꺼도 시동이 꺼지지 않을 때
스위치를 꺼도 시동이 꺼지지 않을 때에는 에어클리너의 입구를 손바닥으로 막으면 공기가 안 들어가게 되어 시동이 꺼진다. 이러한 현상은 여름철에 엔진이 오버히트 될 때 흔히 나타난다.

누나는 편의점 상표가 그려진 비닐봉지 두 개를 들고 왔다. 한쪽에는 도시락이 서너 개 정도 들어 있었고 다른 하나엔 지폐와 동전들이 수북했다. 나는 누나가 열심히 짐을 싸는 동안 잠시 어리둥절한 채로 서 있었다.
가방 두 개에 비교적 간단하게 짐을 싼 누나는 하나를 내게 매개 했다. 나는 이 돈들이 다 뭐냐고, 또 내일이 주말도 아닌데 지금 가서 언제 오냐고 물었지만 누나는 가면서 설명하겠다며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문 밖에는 이미 누나가 렌트한 낡은 자동차가 서 있었다. 옛날 기종이고 낡을 대로 낡아서 싸게 빌렸다고 했는데 안에 CD 플레이어가 있어 노래를 들을 수 있다며 좋아했다. 가방을 뒷자리에 던져놓은 다음 여태까지 모아온 CD들을 좌석 밑에 차곡차곡 쌓았다. 백 장은 넘는 것 같았는데 저것들이 다 얼마일까라는 생각보다는 저 안에 얼마나 많은 소리들이 들어 있을까, 아마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가 들어 있지 않을까 같은 것에 대해 생각했다. 누나는 젖은 신문지에 도시락을 싸서 트렁크에 넣었다. 여름철이라 이렇게 시원하게 해놔야 상하지 않는다고 했다. 누나가 운전을 한 지 오래돼서 시동을 걸고 출발하는 데 꽤나 애를 먹었다. 게다가 시동이 걸릴 때 울리는 진동이 생각보다 컸고 가만히 있어도 차체가 계속 덜컹거렸기 때문에 불안했다. 그러나 출발한 뒤에는 꽤 능숙하게 차를 몰아서 정확히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는데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누나는 아까 내가 했던 질문들에 대해서는 아무 대답도 않다가 도대체 어디 가는 거냐고 묻자 빨간 신호등 앞에 멈춰 섰을 때야 내 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나서 손짓했다.
동해 바다.
에어컨이 나오지 않았지만 고속도로까지 나가고 나서는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세차게 들어왔기 때문에 시원했다. 햇빛 때문이라며 누나는 어디에서 구했는지 커다란 선글라스를 쓴 채 운전을 했다. 이름 모를 건물들과 언덕들을 계속해서 스쳐지나갔는데 날씨가 맑아서 그런지 특별히 경치가 좋은 것도 아닌데 마음이 편안해졌다. 바다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괜히 기대가 됐기 때문에 그랬던 걸지도 모른다.
휴게소에서는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를 하나씩 사고 트렁크에서 꺼내 온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먹었다. 나는 제육덮밥이었고 누나는 돈가스 정식이었는데 특별히 골라온 거라며 누나는 웃었다. 그러나 잠시 후에는 울적한 얼굴이 되었는데, 다 먹고 차에 돌아올 때쯤에는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풀이 죽어서 터덜터덜 걸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제육덮밥을 누나가 가져온 것에 대해 좋은 반응을 보이지 않아서 그런 줄 알고 계속 옆에서 맛있었다고 손짓했지만 누나는 시큰둥했다. 그래도 모처럼의 여행인데 이렇게 우울한 채로 다시 떠날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이젠 노래를 들으면서 가자고 했다. 딱히 내 허락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잘 알 텐데도 누나는 내게 음악 들어도 되지? 하고 물었다. 누나가 선택한 CD 겉표지에는 두 남자가 마주보는 채로 악수를 하며 서 있는 사진이 찍혀 있었는데, 오른쪽의 남자는 온 몸이 불에 타고 있었다. 나는 이런 걸 들으면 기분이 더 나빠지지 않겠느냐고 물었지만 누나는 수록되어 있는 노래들은 표지와 상관없이 밝은 노래들이라고 했다. CD를 플레이어에 넣고 재생 버튼을 누르자 작은 진동이 앉은 좌석을 통해 전해져왔다. 누나는 음질이 별로 안 좋긴 하지만 들을 만하다고 했고 우리는 다시 출발했다. 노래를 들으면서 누나는 꽤 기분이 나아진 것 같았고 잠시 후에는 어깨를 들썩이기도 해서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누나가 전에 하던 것처럼 들리지 않는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누나는 그걸 보더니 입을 크게 벌리고 한참을 웃었다. 나중에 길이 막혀 손이 자유로워졌을 때 그 이유를 말해줬는데, 내가 몸을 흔들고 있었을 때는 정말 차분한 노래가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그랬다고 했다. 손짓을 하면서 아까 그 장면이 다시 떠올랐는지 누나는 또 한동안 웃었고, 이번에는 나도 따라 웃었다.
주위가 점점 어두워지고 나서는 산길이 나왔다. 네비게이션도 없는 차라서 누나는 커다란 지도를 내게 들고 있으라고 한 뒤 그걸 보면서 운전을 했다. 그러나 잠시 후에는 지도를 볼 수도 없을 정도로 깜깜해졌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잠시 멈춰서 조금 쉬기도 하고 트렁크에 있던 후레쉬로 지도를 좀 살펴보고 나서 다시 출발하기로 했다. 처음엔 내가 후레쉬를 들고 누나가 지도를 살펴봤지만 뭔가 답답했는지 잠시 후에는 자기가 들고 살펴보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밖에 나가서 잠시 산바람을 맞았다. 아래에 불이 밝혀진 빌딩들이 보이는 걸로 봐서 깊은 시골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하늘에는 별이 많이 떠 있었다. 잠시 후에 다시 차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누나는 길을 다 찾았는지 지도를 접고 등받이에 머리를 댄 채로 앉아 있었다. 나는 누나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또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좀 망설였는데, 먼저 얘기를 시작한 것은 누나 쪽이었다. 그러나 누나가 얘기한 건 내가 하고 싶었던 질문들에 대한 답은 아니었고 아까 휴게소에서 들었는데 이 산에서 귀신이 그렇게 많이 나온다더라, 무서운데 빨리 가야겠다, 넌 안 무서워? 이런 말들이었다. 나는 농담 식으로 그런 애기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 누나는 필요 이상으로 불안해했다. 딱히 귀신을 무서워해서 그런다기보다는 뭔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처럼 머리를 쥐어뜯고 계속 고개를 저었다. 잠시 후에는 아버지가 내게 하던 것처럼 손바닥으로 내 뺨을 잡고 입모양으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이제 우리 어떡하지? 여기서 더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도대체?
누나가 그렇게 애기하면서 점점 눈시울이 붉어졌기 때문에 나는 누나를 품에 안은 채로 등을 토닥여주었다. 왜 불안해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때의 누나는 굳이 이유를 알고 싶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외로워 보였고 슬퍼 보였다. 그래서 나는 손짓 대신에 그런 행동으로 누나를 위로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누나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채로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있는 것으로 나도 왠지 모르게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우리는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
잠시 후에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출발하려고 했으나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누나가 앉은 쪽 창문 밖으로 남자가 나타난 것도 그때쯤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 것 같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가 누군지 한 번에 못 알아봤다는 게 조금 이상하긴 하다. 아마도 그런 곳에서 그를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바로 그 전날에도 집 앞에서 만났던 그를 알아보는 데에 시간이 조금 걸렸던 것 같다. 나는 한참 동안 그 남자를 쳐다봤고 남자도 나를 보면서 뭐라고 말했는데, 그때는 어떻게 저 사람이 여기 있지, 하는 생각에 너무 집중하느라 그의 입모양을 자세히 살피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들을 둘러싼 상황에, 그리고 그 뒤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뭔가 영향을 미쳤을지는 잘 모르겠다.


   

5.배터리가 약한 차의 시동을 거는 방법
배터리가 약해서 불안한 경우에는 시동을 끄기 전에 모든 전장품의 가동을 중단하고 약 10분정도 아이들링(공회전)을 해두면 안심할 수 있다. 시동모터를 지나치게 돌려서 배터리가 방전되었을 때는 30분 정도 기다렸다가 시동을 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 누나에게 저 사람이 왜 저기에 있냐고, 어떻게 저기에 있을 수가 있냐고 물었어야 했다. 그렇게 확실하게 그 차창 밖에 서 있던 남자의 정체를 확인했었다면 다음 날 아침에 밥을 먹으러 들렀던 식당에서 서로 기분이 찜찜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너무 놀랐기도 했고 또 누나가 핸들에 얼굴을 박고 있어서 말을 걸 수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 남자가 떠나간 뒤에도 그냥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삼십 분쯤 지나서 누나는 일어나 다시 시동을 걸었고, 이번에는 다행히 차 속에 진동이 울렸다. 산을 넘어서 근처 여관에 자리를 잡은 후에 우리는 서로 아무런 대화 없이 한 이불을 펴고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에 다시 떠났다.
바닷가 근처 마을에 도착해서야 누나는 어젯밤 얘기를 했다. 작은 횟집이었고 우리는 흰 살 생선회를 시켜 먹고 있었다. 그때서야 나는 누나가 그때 봤던 남자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누나는 그 남자를 집주인이 아닌 아버지로 봤던 것이다. 그래서 그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고, 자기가 혹시 유령을 봤던 건지 두려워서 남자가 떠난 뒤에도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다고 했다. 그걸 가지고 우리는 한참 동안 얘기를 했는데, 끝에 가서는 네가 잘못 본 거다, 아니다 하는 다툼이 되어버려서 식당을 나올 때쯤에는 서로 기분이 상해버렸다. 작은 사과로 끝낼 수 있는 다툼이었으나 그때는 서로 기분을 풀기보다는 어젯밤의 그 이상한 일을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한참 동안 서로 대화를 하지 않았다.
바닷가에는 사람들이 벌써 많이 와 있는지 주변에 차를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자리가 있다 싶어서 차를 세우면 늘 차 앞에 사람이 나타나 보닛을 손바닥으로 세게 쳐댔고 그러면 우리는 다시 차를 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누나는 한 시간에 천 원씩 하는 해수욕장 전용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우리는 가방을 놔두고 바닷가를 향해 걸어갔다.
그때 봤던 게 내 생애 첫 바다였지만 솔직히 나는 조금 실망했다. 바다가 생각보다 그렇게 예쁘지 않아서 그랬던 게 아니라 생각보다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사진이나 영상에서 봤던,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장과 푸른 바다의 모습을 기대했는데 그 모든 것들이 해수욕 하러 온 사람들에 의해 가려져 있었다. 저 멀리 수평선만 간신히 보였는데 그것만 감상하며 서있기에는 햇볕이 너무 강했다. 누나는 저는 다리 때문에 신발에 모래가 자꾸 들어간다며 짜증을 냈다. 대놓고 내게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신발을 벗어서 신경질적으로 털어내는 모습으로 그걸 알 수가 있었다. 그런 다음에는 우리 둘 다 살짝 인상을 찌푸린 채로 바닷가를 바라봤다.

*

어떻게든 살게 되어 있다.
아버지가 자주 했었던 말이다. 내가 직접 들었던 건 아니고 누나가 얘기해주었다. 내가 무슨 불평이라도 하면 맨날 그런 말을 한다고, 진짜 짜증난다고 하면서 누나는 인상을 썼다.
그걸 누가 몰라. 어떻게든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잘 살고 못 살고가 중요하지. 괜히 자기가 못 사는 것 같으니까 그런 말 하는 거지.
나는 당시에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지만 지금은 아버지의 그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 우리는 정말 어떻게든 살았다. 아버지가 있을 때도, 우리 둘만 남았을 때도 말이다. 해수욕장 튜브 대여소에 일을 얻어서 하루 종일 튜브에 바람을 넣고 사람들에게 내어줬고, 밤에는 자동차 안에서 잠을 잤다. 가끔 잠이 오지 않을 땐 나가서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아무도 없는 모래사장에 둘만 누워 있을 때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젖은 모래의 감촉이 왠지 지금보다는 더 나빠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게 했다. 그러나 항상 아버지의 반대편에 서 있던 누나는 역시 그렇지 않았나 보다.
그로부터 정확히 한 달 후에 나는 혼자 남겨지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좁은 자동차 안에 누나는 없었다. 해변에도 없었고, 자주 가던 동네 식당이나 마트에도 없었다. 나는 하루 종일 누나를 찾아다니고 싶었지만 그날도 해수욕하러 오는 사람들은 넘쳐났다. 일이 끝나고 나서 밤늦게까지 거리를 돌아다녔지만 전혀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몇 달 동안 그렇게 살다가 결국 포기했는데 어떻게 그 이후의 시간들을 견뎠는지 모르겠다. 잊으려고 너무 애써서 그런지 지금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은 아주 희미하게 남아 있고 나는 그걸 간신히 붙잡은 채로 산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누나에 대해서 너무 몰랐던 게 아닌가, 몰라도 포옹으로 넘기지 말고 확실하게 이해해서 함께 견뎌내야 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니까 산에서 남자를 만났던 그날도 그랬다. 누나가 그 남자가 집주인이 아니라 아버지였다고 했을 때 아니다, 집주인이었지 않느냐, 누나가 잘못 본 거다 할 게 아니라 그럼 아버지는 그때 왜 거기 있었을까, 누나에게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나, 이런 것들을 물었어야 했다. 그 남자가 진짜 누구였는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다만 그런 질문들로 인한 대답으로 드러났을 누나의 암담함을 내가 알았더라면 우리는 함께 그것을 나눴을 것이고 누나는 내 곁에서 좀 더 버텨주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언젠가는 내가 누나를 이해한 만큼 누나도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지 않았을까. 내가 지금 아버지를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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