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희소설문학상 고등부 당선작 - 전북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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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7호. 2018.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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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희소설문학상 고등부 당선작
오르골
[1486호] 2018년 10월 16일 (화) 19:14:12 전북대신문 press@jbnu.ac.kr

최명희청년소설문학상 고등부 당선작

오르골

석예원 안양예고 2

   

현관문을 여니 요란한 매미 울음소리가 귀 주변을 휘감았다. 날도 더운데, 지치지도 않아. 쏟아지는 햇빛을 막기 위해 이마 위로 손그늘을 치며 중얼거렸다. 말 그대로 푹푹 찌는 날이었다. 팔을 뻗고 주먹을 꽉 쥐면 여름 공기가 손바닥 위에서 바스라질 것 같았다. 햇빛에 눌려 몸이 무거웠다. 신경질 적으로 현관문을 닫았다. 쿵, 소리가 매미의 울음소리 사이를 비집었다. 몸을 돌려 햇빛으로 달궈진 복도 위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까지 가는 길이 길었다. 복도식 아파트에서 살기 시작한 지 몇 년이 지나고 있었지만 긴 복도는 늘 귀찮은 존재였고 때때로는 낯설었다. 뻥 뚫린 복도의 옆면에서 들어오는 햇빛에 미간을 찌푸렸다. 핸드폰을 들어 잔뜩 좁아진 시야로 시간을 확인했다. 출근 시간까지 한 시간 반이 채 남지 않은 상태였다. 서둘러서 가야만 했다. 습한 여름공기가 투명하게 내려앉은 복도에 둔탁한 걸음소리가 울렸다.

“에어컨을 왜 안 틀어주는 거야?”
맞은편에 서서 작업을 하던 진희언니가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그러게요. 옅은 웃음과 함께 짧게 대꾸하자 진희언니는 기다렸다는 듯 목소리를 한층 높여 말을 이었다.
“하여간, 어디서도 대우를 못 받는다니까. 지금 팀장실 한 번 들어가 봐라. 얼마나 시원하게.”
“언니 들어가 봤어요?”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넘어오는 택배상자의 바코드를 찍으며 묻자 진희언니가 황당하다는 듯 내게로 시선을 던졌다. 아니, 내 말은, 그럴 거라는 거지. 진희언니가 말을 뱉었고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선 우린 다시 상자의 바코드를 찍는 데에 집중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지 않으면 넘어오는 택배상자를 놓칠 수도 있었고 길게 대화를 이어나가봤자 다가오는 건 팀장이나 간부의 잔소리뿐일 게 뻔했다. 정적 사이로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는 소리, 택배상자가 그 위로 떨어지는 소리, 바코드를 찍는 스캐너의 짧은 기계소리가 떠돌았다. 규칙적이었고 둔탁했다. 작업을 하며 가만히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꼭 하나의 음악이 만들어 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렇게나 두들기는 피아노소리, 활을 마구 문질러 내는 바이올린 소리. 꼭 그런 류의 소리가 잔뜩 뭉쳐져 만들어진 불협화음. 귀를 막고 싶었는데 컨베이어벨트 위로 계속 밀려오는 택배상자에 그럴 여유도 없었다. 등줄기가 땀으로 흥건했다. 고개를 살짝 들어 천장에 달린 에어컨을 쳐다보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은 건지 필터가 먼지로 자욱했다. 다시 고개를 내렸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턱끝에서 툭, 떨어졌다.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했다. 트럭에서 택배상자의 하차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벨트의 끝 쪽에 상자를 올리면 그 상자에 붙어있는 바코드를 하나하나 찍는 게 우리의 업무였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바코드를 찍어야 몇 시에 어디쯤 택배가 오가고 있는 지 고객들이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저 멀리서 상자가 거칠게 툭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벨트는 천천히 굴러가는 것처럼 보여도 그 속도는 생각보다 빨랐다. 잠깐 방심하면 넘어오는 택배상자를 놓치기 십상이었다. 그럼 후다닥 손을 뻗어 상자를 붙잡아야만 했고 그렇게 한 번 밀리기 시작하면 한동안은 훨씬 빠르게 바코드를 찍어야만 다시 제 속도를 찾을 수 있었다. 한 구역 당 두 명. 내 파트너는 진희언니다. 처음 굴러오는 상자를 기준으로 홀수 순서의 상자는 내가, 짝수 순서의 상자는 진희언니가 담당했다.
진희언니는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했다.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가 꽤 멀어 자연스럽게 자취를 시작하게 되었고, 독립을 하면서부터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처음 함께 일을 하기 시작했을 때는 손발이 잘 맞지 않아 순서가 뒤섞이는 일이 허다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척하면 척, 이라는 말이 전혀 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퉁, 둔탁한 소리가 불청객처럼 나타나 불협화음 사이를 비집고 공간에 울려 퍼졌다. 놀라서 휙 고개를 들자 당황이 잔뜩 서린 진희언니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언니의 양손이 텅 비어있었다. 손에 들고 있던 바코드스캐너를 놓친 모양이었다. 언니가 급하게 허리를 숙여 떨어뜨린 바코드기계를 줍는 동안 나는 더 빠르게 팔을 움직였다. 공석이 되어버린 언니의 몫까지 해내야 했다. 정신이 없었다. 땀이 더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서둘러 몸을 일으킨 진희언니가 다시 급하게 택배상자를 붙잡고 빠르게 바코드를 찍어댔다. 두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진희언니가 푹, 내쉰 한숨이 무겁게 떨어져 택배상자를 타고 떠내려갔다. 이런 일은 흔치 않았지만 종종 있었다. 진희언니가 땀이 많은 편이라 그랬다. 땀이 흘러도 손을 올려 닦을 여유가 없다는 것에 언니는 매일 투덜거렸다. 손에 흠뻑 맺힌 땀 때문에 바코드스캐너가 자꾸 흘러내린다고 했다. 그러면 바코드를 제때 못 찍고 못 찍으면 또 밀리고 그러면 일의 효율성이 떨어져 버린다고. 그렇게까지 말하면 어느새 결론은 다시 에어컨을 켜야 한다, 에 도착해 있었다. 뭐, 들어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동시에 컨베이어 벨트가 움직임을 멈췄다. 바코드스캐너를 내려놓고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대충 닦아내고 있자 진희언니와 시선이 맞닿았다. 입모양으로 언니가 미안, 하고 말했다.

   

병실에 들어오니 소독약 냄새가 훅 끼쳤다.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가 금방 풀었다. 탁상에 놓아져 있던 오르골을 집어 들었다. 약하게 부품끼리 맞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코팅된 적갈색의 나무로 만들어진 상자 형태의 오르골이었다. 가로로 한 뼘 반, 세로로는 한 뼘 정도 되는 크기였고 바닥에 태엽을 돌릴 수 있는 손잡이가 나있었다. 고개를 숙여 오르골에 코를 가져다 대었다. 이십년이 지났는데도 쌉쌀한 나무 냄새가 났다. 지나간 세월을 담은 이 냄새도 좋았지만 제일 좋아하는 건 상자의 뚜껑을 열었을 때는 은색 오르골이 돌아가는 게 빤히 보인다는 거였다. 꼭 작은 피아노 같았다. 태엽을 있는 힘껏 돌렸다. 손을 놓자 맑은 음색의 노래가 울리기 시작했다. 클로드 아실 드뷔시의 ‘달빛’. 익숙한 노래가 귓가에 맴돌자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오르골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고개를 들었다. 침대에 누워 고른 숨을 내쉬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잠들어있는 엄마의 손을 맞잡았다. 투박한 손 두 개가 맞닿아있는 꼴이 우스웠다. 모여 있는 손을 찬찬히 훑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태엽이 거의 다 돌아간 건지 오르골에서 울리던 노랫소리가 서서히 느려져갔다. 몸을 틀고 오르골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한 번 더 태엽을 돌렸다. 태엽이 다시 감기고 음악은 제 속도를 되찾았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셨다가, 다시 크게 내뱉었다. 일하는 내내 가만히 묵혀두었던 고됨이 한껏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맞잡았던 손을 풀고 벽에 기대어 앉았다. 눈을 감았다. 피곤함이 잔뜩 쌓여 있어 금방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잔잔한 노랫소리와 함께 축 늘어진 몸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어? 일찍 왔네?”
휴게실에 들어가자 구석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진희언니가 나를 반겼다. 진희언니의 말에 고개를 돌려 시계를 바라보았다. 근무 시작 시간보다 삼십분 이른 시간이었다. 그냥, 오늘은 이상하게 눈이 일찍 떠지더라고요. 웃으며 대답하자 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희언니와의 대화가 멎자 나는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사람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쪽잠을 자고 있었다. 여기가 휴게실인지, 아님 숙박소인지 외관상으로는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나름의 생존방법이었다. 택배 상하차 일의 특성상 무거운 택배상자를 쉼 없이 날라야 했고 많은 체력이 필요했다. 그 때문에 조금의 힘을 더 만들어내기 위해서 몸을 구기고 쪽잠을 잤다. 쉬는 시간이 거의 없다시피 일을 했기 때문에 미리 휴식을 취해 두는 것이기도 했다. 내가 딱 근무 시간에 맞춰 일터에 도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딱히 마주치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동정심이나 안타까움 같은 감정 때문은 아니었고 불편해서였다. 벽 한쪽에 억지로 몸을 맞춰 넣고 쪽잠에 들려 애쓰는 사람들 사이에 서있으면 무언가에 자꾸 눌리는 기분이었다. 머리부터 어깨, 허리, 다리까지. 나는 그건 삶의 무게 때문일 거라고 혼자 생각했다. 몸을 돌려 휴게실을 빠져나왔다. 끼익, 흉한 나무문 소리가 새어나왔다. 눈을 질끈 감았다. 휴게실 문 밖에 비치되어 있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근무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기 전까지 자리에 앉아 쉬기로 했다. 잠시 동안 휴대폰을 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으니 곧 스피커에서 익숙한 종소리가 울렸다. 그와 동시에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휴게실 문이 열리고 휴게실에서 잠을 자던 사람들이 우르르 밖으로 걸어 나왔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택배상자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넘어올 것이었다. 걸음을 재촉했다. 걸을수록 벨트 돌아가는 소리가 점점 더 커져갔다. 눈을 꾹 감았다. 더위 때문인지 머리가 띵하고 울리는 느낌이었다.

   

“저 건너 구역에 고운이라고, 알아?”
“고운이요?”
질문을 되물으며 아침에 싸온 김밥을 한 입 베어 물었다. 혀끝에서 시큼한 맛이 맴돌았다. 기분 탓인지 아님 날씨 때문에 벌써 상한 건지 긴가민가했다. 애초에 김밥을 싸오는 게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래도 배를 채울 수 있는 유일한 먹을거리를, 찝찝하다는 이유만으로 버릴 수는 없었다. 미간을 잔뜩 구기며 김밥을 계속 입 안에 욱여넣었다.
“걔 잘렸대. 오늘. 한 두 시간 쯤 전에.”
“두 시간 전이요?”
깜짝 놀라 되묻자 진희언니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뒤이어 아까 일하던 중 일어난 소란에 대해 언급했다. 관리자하고 대판 싸우던 게 고운이라는, 그 친구라고 했다. 종종 들은 얘기로 만들어진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열일곱에서 열여덟. 그 언저리의 나이였고 학비를 댈 여유가 없어 아침에 학교로 등교하는 대신 이곳으로 출근한다고 했다. 사정이 딱한 아이라고 얼마 전에도 진희언니가 말한 적이 있다. 이상하게 마음이 저렸다. 왜인지는 몰랐다. 일의 특성상 일하는 사람은 유동적이었다. 자리를 잡고 일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매일 마주하는 얼굴들이 다르다는 말이다. 대부분은 급전이 필요해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사람들이라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겪었다. 거기에 동조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 잘 버티고 있었고 당연한 이별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자꾸 불편한 이유는 뭘까. 마주친 적이 별로 없을뿐더러 친분이 없는데도.
“월급 때문인 가봐. 원래 정해진 월급보다 육 만원인가를 덜 줬대. 그래서 따졌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 너, 해고야, 하고 잘렸다는 거야. 진짜 황당하지, 황당해. 아니, 우리가 무슨 돈 먹는 짐승인가? 주는 대로 따박따박 받아먹기만 해야 하는 거야? 웃기지도 않아. 정당한 대가 요구하면 돈에 미친 사람이다, 어린데 빠졌다 뭐다, 욕이나 얻어먹고. 뭐, 그래.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긴 하지.”
진희언니의 언성이 높아지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점점 몰리는 게 느껴졌다. 언니, 목소리 좀 죽여요. 관리들도 듣겠어. 허리를 숙여 얼굴을 가까이 대고 말하자 진희언니가 입을 꾹 다물고 입술을 비죽였다. 나는 시선을 내리깔고 다시 김밥을 먹는 데에만 집중했다. 목이 메여왔다.

   

창문을 열었는데도 에어컨 한 번 틀어진 적 없는 집 안은 후덥지근했다. 작은 집 안 구석에 놓인 침대에 누워있으니 괜한 서러움이 밀려왔다. 일터에서 먹은 김밥이 정말 상한 것이었는지 속이 좋지 않았다. 식은땀이 계속 흘렀다. 아랫입술을 꾹 깨물어도 신음이 새어나왔다. 무슨 약이라도 집어먹고 싶었지만 새벽 한 시에 문을 연 약국은 없을 것이 뻔했다. 아니, 그 전에 움직이기도 벅찼다. 뜨거운 숨이 입술을 바싹 말렸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눈물이 차오르다가 목구멍에서 턱, 하고 막혀버리는 느낌이었다. 서러운데 눈물이 나지 않아 더 서러웠다. 불편함과 더위, 동시에 이불처럼 몸 위로 덮인 악조건에 몸을 뒤척였다. 움직일 때마다 까슬까슬하게 올이 돋은 오래된 매트리스가 맨살을 자꾸 쿡쿡 찔러댔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손을 뻗어 침대 밑에 놓여있던 물컵을 집어 들었다. 입 안을 가득 채운 물을 목 뒤로 넘기자 바싹 말라가던 속이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다시 물컵을 내려놓았다.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고 있으니 병실에 혼자 남아있을 엄마 생각이 났다. 내일은 일이 끝나면 바로 엄마를 보러 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눈을 감았다. 잔뜩 지쳐서인지 금방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가 대장암 말기를 선고받았던 그 날, 서로의 손을 붙잡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아니, 엄마는 울지 않았던가. 나만 울었던가. 내 어깨를 도닥거리며 엄만 괜찮아, 하던 그 순간은 선명하게 기억난다. 내가 엄마를 위로했어야 했는데. 그 모순적인 상황을 아빠가 봤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엄마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밤낮없이 아르바이트를 했고 엄마가 치료에 할애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부터는 병원 밖으로 잠깐 산책을 나가는 것조차 버거워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픈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엄마의 옆에서 말동무가 되어주는 것뿐이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여름이라 장미가 예쁘게 피었더라, 하는, 그런 이야기들. 그리고 종종 노래가 듣고 싶다고 말하면 오르골을 돌렸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언젠가 말도 없이 떠났다던 아빠에게서 선물 받은 오르골이라고 했다. 연애를 한 적 둘이 함께 영화를 보러 갔었는데 그 때 들었던 삽입곡이 너무 인상이 깊었다고, 아빠도 아마 그래서 선물해 준 게 아닐까 싶다고, 엄마가 말하던 게 희미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결혼을 약속하며 반지와 함께 선물해 주었지만 그 이후로 떠났다고 했다. 그러니까 반지와 오르골은 결혼의 기약 선물임과 동시에 이별 선물이었던 것이다. 어디론가 훌쩍. 공기처럼 근처에 남아있는지, 바람처럼 멀리멀리 떠나가 버렸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아빠의 흔적은 오직 뱃속에 남아있던 나 하나뿐이었더랬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빠를 미워하고 원망할 만도 한데, 엄마는 그런 것들을 품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새벽녘에 자주 울었다. 어릴 적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잠든 척 하며 몰래 훔쳐본 엄마의 모습은 대부분 눈물을 급하게 닦아내거나 어깨를 떨며 숨죽여 울던 모습이었다. 오히려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그런 아빠에게 위로를 받았다. 위로를 건네주길 기다렸다. 일을 하고 돌아온 저녁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온 엄마는 오르골을 돌렸고 음악에 맞춰 미소 지었다. 정말 지쳤을 때, 투명한 선율을 따뜻한 목도리처럼 두르고 위로를 받는 것처럼 보였다. 소리의 위로. 혹은 떠나버린 아빠의 위로. 훔쳐본 적 없었지만 엄마의 발자국 아래 그려지는 엄마의 기억들이 너무 선명했다. 선명해서, 오르골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 한 쪽이 맑아지는가 싶다가도 문득 그 소리가 너무 차가워 어느 순간 외로워지곤 했다.
엄마와 아빠가 본 영화에 대한 궁금증은 흉터처럼 늘 지니고 살았고 그에 대한 답을 찾게 된 건 삼 년 전, 열여덟 무렵이었다. 우연이었다. 음악 선생님이 보여준 영화였다. 장 자크 아노 감독의 ‘티베트에서의 7년’. 그 영화 속에서 드뷔시의 ‘달빛’은 처음과 끝을 장식했다. 나는 마지막에 오르골 소리로 울려 퍼지는 드뷔시의 노래를 듣고 한참동안 눈물을 뚝뚝 흘렸다. 감동의 눈물이었는지 정말 슬퍼서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저 그 내용만이 뇌리에 박혀 문득문득 떠오르곤 했다. 임신한 아내를 뒤로한 채 히말라야로 떠난 주인공 하러가 얼떨결에 티베트에서 머물게 되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가장 슬펐던 건, 7년 뒤 그가 가족의 곁으로 돌아갔을 땐 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얼굴 한 번 마주한 적 없는 그의 아들 랄프는 하러를 만나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마 원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러는 그런 랄프에게 오르골을 선물했다. 오르골이 부른 노래는 달빛. 노래의 첫 음이 울리는 순간 눈물이 흘렀다.
나는 나의 아빠를 생각했다. 그 노래를 듣는 엄마는 아빠를 찾고 있는 걸까. 영화 속에서 랄프는 결국 하러를 용서했지만 나는 그렇게 아빠를 용서할 수 있을까. 이제는 살갗을 파고들어 놓을 수조차 없게 된 불행의 끈을, 밧줄을, 나는 쥐고 있는 것일 지도 몰랐다. 문득 고운이 떠오른다. 동시에 엄마가 암 투병을 시작하며 학업 대신 돈벌이에 더 힘써야했던 학창시절의 나도. 다시 한 번 가슴이 저렸다.
더 깊은 잠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어디선가 오르골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오르골의 노랫소리가 서서히, 천천히 죽어갔다.

“나도 육 만원이 덜 들어왔어.”
평소같이 바코드를 찍던 진희언니가 나지막하게 말을 뱉었다.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는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아 네? 하고 되물었지만 언니는 입을 꾹 다문 채 말을 삼켰다. 그 후에 혼자 바코드를 찍으며 곰곰이 들려온 단어들을 조합해 머릿속으로 문장을 완성해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전 언니가 바코드스캐너를 떨어뜨렸을 때, 저 멀리서 관리자가 언니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동료의 말이 떠올랐다. 육 만원. 나는 이 세 글자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단어에 대해 생각했다. 왜 하필 오만원도 십만원도 아닌 육 만원일까. 나이가 어리고 실수를 잦게 한다는 사소한 이유만으로 육 만원을 가질 수 있는 자격조차 잃어버려도 되는 걸까.
툭, 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자 그와 동시에 택배상자 두 개가 우르르, 벨트 위에서 떨어졌다. 진희언니가 또 바코드스캐너를 놓쳤는데 그걸 줍기 위해 급하게 몸을 숙이다가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움직이던 택배상자를 떨어뜨린 것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스캐너를 거치지 못한 택배상자가 이미 저만치 멀리 떠나가 있었다. 급하게 손을 뻗어 바코드를 찍었다. 진희언니가 떨어진 택배상자를 줍는 동안 언니의 몫까지 해내야했다. 손가락이 저렸다. 택배상자 두 개와 바코드스캐너까지 줍고 일어난 언니가 순간 움찍, 하는 게 느껴졌다. 언니가 왜 저러지. 뒤를 돌아볼 여건이 되지 않으니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낯설고도 익숙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아차, 싶었다.
“아니, 지금 제정신이에요?”
우리 구역의 관리자였다. 아마 택배상자가 떨어지면서 울린 큰 소리 때문에 온 것 같았다. 진희언니는 연신 허리를 굽혀댔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이상한 열기에 등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저번부터 자꾸 실수하는 거 몇 번 눈 감아줬다고 계속 이러면 안 되죠. 그쪽 없어도 여기 자리 차지하려는 사람 많아요. 예? 진짜 잘리고 싶어요?”
“죄송합니다.”
진희언니가 세 번째 사과의 말을 내뱉자 동시에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요란하게 기계 소리를 내던 컨베이어벨트가 멈추니 온통 정적이었다. 그 사이로 관리인이 한 번 더 언성을 높여 말했다.
“이러다가 택배 상하차 처리 제대로 안돼서 항의 받으면 책임질 겁니까? 대학생이라고 봐줬더니, 안 되겠네.”
진희언니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무언가를 억지로 잔뜩 삼켜내고 있는 것처럼. 관리인이 바닥에 침을 뱉고 뒤를 돌아 사무실로 돌아갈 때까지 진희언니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잦아질 때쯤에 언니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내가 다가가기도 전에 진희언니는 발걸음을 옮겨 일터를 나갔다. 나는 말없이 진희언니의 걸음을 눈으로 좇았다. 시선은 언니를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햇살이 강했다. 언니의 뒷모습이 빨갛게 달아 내려오는 햇빛 사이로 점점 흐려져 갔다.
진희언니는 점심시간이 다 끝난 후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말없이 공석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관리인이 노발대발 화를 냈다. 전화를 해보려고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러다가 내게 진희언니의 전화번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사실이 너무 놀라워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그러고 보니 진희언니가 나보다 두 살이 많았는지 세 살이 많았는지, 분명 대학교를 다니긴 했는데 어디를 다니는지, 졸업 학년인건지 아님 휴학을 해서 그 아래학년이었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내가 아는 건 김진희, 라는 언니의 이름, 얼굴, 그뿐이었다. 이런 상황에 미안함이 몰려왔지만 일단은 다시 일에 집중해야 했다. 나는 자연스레 언니의 몫까지 두 배로 일을 해야만 했는데 손가락이 너무 아파서 잠깐 동안 진희언니가 너무 미웠다. 그러다 건너편 주인 잃은 바코드스캐너를 볼 때면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주 펑펑. 그런데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감정이라는 게 다 밟힌 낙엽처럼 바싹 메말라 버렸나. 그런데 슬픔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그건 확실히 아닌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진희언니가 내일이면 돌아올지 말지에 대해서만 고민했다. 추측일 뿐이지만, 아마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못 돌아 올 것이다. 이제 이곳에 진희언니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일이면 새로운 사람이 진희언니의 자리를 대신할 테니까. 나는 혼자 바코드를 찍어대며 또 얼마나 엇갈릴지를 걱정했다. 오늘은 비교적 날이 선선한 탓인지 손이 건조했다. 그 덕에 스캐너를 집기 수월했다. 삑, 삑, 하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귓속을 툭툭 건드렸다. 여름을 누비는 작은 참새떼처럼.

   

비가 온다. 비가 오니 습함이 더했다. 아침에 분명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도 찝찝하고 눅눅했다. 신발장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우산을 펼쳤다. 비가 생각보다 많이 내려서 종아리가 흠뻑 젖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먹구름이 가득했다. 하루 종일 비가 쏟아질 모양새였다. 평소보다 아주 조금 더 기분 나쁜 날이었다. 서둘러 비를 피하고 싶었다. 걸음을 재촉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진희언니는 없었다. 그 대신 나보다 다섯 살은 어려보이는, 고운의 또래처럼 보이는 남학생 한 명이 그 자리를 메웠다. 아르바이트로 온 건지 손이 서툴렀다. 그 때문에 업무의 절반 이상의 이상을 내가 처리해야만 했다. 어제와 오늘 일의 양이 많아서 그런지 바코드스캐너를 쥔 오른손이 뻐근했다. 그 중 검지가 유독 저렸다. 계속해서 지쳐가고 있었다. 오늘 치 아르바이트를 끝낸 이 남자아이가 자리를 떠나면 또 낯선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고 일을 해야 할 것이었다. 그러면 그대로 일은 두 배겠지. 벌써 머리가 지끈거렸다. 더 이상은 내 말을 들어줄 말동무도 없었다. 일일 파트너가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살갑게 먼저 말을 건넬 만큼 너그럽고 자비롭고 활달한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어차피 하루 이틀이면 헤어질 사람들이었으니. 고개를 돌렸다. 컨베이어벨트가 쉼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벨트를 빤히 보고 있자니 오르골 생각이 났다. 이곳이 꼭 오르골 안인 것만 같다는 생각. 컨베이어 벨트는 몸체고, 툭, 툭, 떨어져 그 위를 타고 움직이는 택배상자들은 소리를 만드는 작은 바늘들. 그렇다면 그와 맞부딪히는 것들은, 나의 시간, 진희언니의 땀과 고운의 육 만원. 그런 것들이었다. 그리고 이곳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것들. 그런 것들이 부딪혀 지잉, 하는 컨베이어벨트 소리, 툭, 상자 떨어지는 소리, 삑, 하는 바코드 찍는 소리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한 데 뭉쳐 이상하고 교모하면서, 어쩌면 가장 조화로운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당장이라도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눈앞이 어질했다. 꾹꾹 삼켜냈던 눈물이 한 번에 터져 나왔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귀 주변에서 뭉쳐졌다. 양 손을 들어 두 귀를 틀어막았다.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다.

   

평소처럼 일을 끝마치지 못한 나는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엄마를 만나러 왔다. 복도는 조용했고 적막했다. 혼자 복도를 걸었다. 병실 문 앞에 서서 창문 너머 엄마의 뒷모습을 훔쳐보았다. 잠들어있는 듯 했다. 조용히 병실의 문을 열었다. 아주 미세하게 문이 끌리는 소리가 났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엄마의 뒷모습이 점점 가까워졌다. 축 처진 엄마의 어깨가 유독 외로워보였다.
계속 뒤척인 건지 침대의 시트가 헝클어져 있었다. 손으로 대충 시트를 펴고 침대의 끝에 걸터앉았다. 엄마의 불규칙한 숨과 잔뜩 가라앉은 내 숨이 적막과 함께 병실 안을 맴돌았다. 오르골의 노래를 듣다 잠에 든 건지 엄마 발밑에 오르골이 놓여 있었다. 손으로 쥔 오르골의 상자에 병실의 냉기가 묻어 차가웠다. 두 손으로 오르골을 꼭 쥐었다.
오르골의 태엽을 돌리기 시작했다. 노래가 들려온다.
차갑게 솟은 선율과 함께 오늘의 눈물이 시간과 흘린 땀의 무게에 컨베이어벨트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음악에 맞춰 천천히 숨을 쉬었다. 벅차지 않게. 태엽이 다 풀려가자 노래가 느려진다. 다시 한 번 태엽을 감았다. 이번에는 돌아가는 오르골에 진희언니의 흐려져 가던 어깨와 고운이 잃어버린 학창시절을 싣는다. 노래는 고됨을 삼키고, 모든 것을 풀어내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 해가 지기 전이라 병실의 불을 껐는데도 창문 너머로 빛이 희미하게 새어 들어왔다. 노래가 또 다시 느려져 갈 때, 다시 태엽을 돌렸다. 마지막. 계속, 계속해서 돌렸다. 태엽끼리 몸을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더 이상 돌아가지 않을 때까지 돌렸다. 태엽의 손잡이가 멈춰섰을 때, 한 번 더 힘을 줘 태엽을 돌렸다. 뚝,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손잡이가 부러졌다. 동시에 태엽이 풀리며 노래가 시작되었다. 드뷔시의 달빛. 그 노래가.
어깨가 따뜻해졌다. 고개를 돌리니 엄마가 몸을 일으켜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곤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나도 웃었다. 웃고 있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흘렀다. 참았던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망가진 오르골에서 마지막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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