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NU 교양 100선 읽기프로젝트 18 조지오웰, 『1984』
CBNU 교양 100선 읽기프로젝트 18 조지오웰, 『1984』
  • 전북대신문
  • 승인 2018.11.21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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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한 마디의 말의 힘

▲‘인간(人間)이 존재하지 않는 인간사회’
1948년 조지오웰은 이 소설을 탈고한 후, ‘미래의 어느 한 때’를 구체적인 연도로 표기하는데 어려움을 느꼈다. 거창한 미래보다는 1948의 뒷자리를 84로 바꾸는 것으로 ‘막연한 미래’를 표현한다. 사실 숫자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다만 진보(그것이 진보라 믿는)만을 위해 맹목적으로 나아가는 사회의 ‘어떤 미래’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작가의 시대는 2차 세계대전의 상흔이 지구 곳곳에 남아있던 때다. 그 전쟁을 일으킨 것은 지독한 전체주의고, 대의(大義)를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마땅하다는 참혹한 명제였다. 그런 시대 속에서 작가가 상상한 미래란 대단히 어둡고 절망적이다. 마치 로봇들이 맞부딪혀 살아가듯 조직의 한 일부로서만 존재하는 시대, 사람간의 따뜻한 관계는 물론 근원적인 욕망인 성(性)과 진실한 ‘마음’까지 삭제되어야하는 시대인 것이다. 그 세계는 스탈린이나 히틀러조차 따를 수 없는 완벽한 전체주의요 독재주의다.


소설 『1984』는 그러한 시대 속에서도 ‘나’의 생각을 갖고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찾고자 하던 사내의 쓰라린 패배기라고 할 수 있으며, 동시에 온갖 전자통신기기와 미디어 매체, 범람하는 정보와 지식 속에서 ‘가장 나다운’ 모습을 특정할 수 없는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1984』의 세계는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이스트아시아의 3대 초국가로 정립된 무한한 전쟁의 세계다. 이 세 나라는 비슷한 정치와 사회체제를 유지하면서, ‘승리도 패배도 없는, 전면전도 종식도 없는’ 전쟁을 끝없이 계속한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오세아니아의 제 1공대인 런던에 살고 있으며, 벌집같이 연결된 숱한 정부기관 중 하나인 기록국에서 일하고 있는 당원이다. ‘당’은 ‘대형’이라는 의인적 권력체를 내세우며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데, 첫 번째는 사상에 대한 철저한 통제요 두 번째는 기억에 대한 통제다.


사상통제는 말 그대로 개인의 생각이나 사상을 지배하는데, 어느 건물이건 어느 거리건 곳곳에 설치되어있는 ‘텔레스크린’에 의해 감시되고 통제된다. 이 텔레스크린이란 것은 참으로 요물이다. 당에서 방송하는 소리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이쪽의 모든 소리를 전송한다. 소리뿐만 아니라 텔레스크린의 시계(視界)에 잡히면 이쪽의 모든 행동이 다 보이고 들리는 것이다. 언제 감시를 받는지는 알 수 없다. 수시로 사람들을 창문으로 엿보는 순찰기는 물론 사상경찰도 깔려있다. 그들은 필요하다면 언제든 감시의 선을 꽂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소리와(화장실마저) 캄캄할 때 외에는 자신들의 모든 동작이 세세히 감시되고 있다는 사실에 익숙해지고 본능처럼 습관화 돼있다. 표정 하나까지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기억에 대한 통제는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는 당의 이론으로 집약해 볼 수 있다. 그들은 당의 독재 권력을 절대화시키기 위한 과거날조는 물론, 각종 문서와 신문, 책자와 녹음, 영화 등 모든 과거의 기록을 삭제하거나 말살함으로서 어떤 역사적 사실도 완벽히 ‘없었던’ 일로 뒤바꿀 수 있다. 개인의 기록이나 기억도 마찬가지다. 어떤 존재든 한번 증발하고 나면, 그대로 끝이다. 누구도 증명할 수 없다. 스스로조차 자신의 기억을 확신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 소설이 간혹 예언소설이라고까지 불리는 것은, 이러한 미래 사회에 대한 설정들이 지금의 현대사회와 소름끼치게 닮았다는 점에 있다.


우리는 안전하고 질서 있는(그렇게 믿는) 사회안전망 안에서 CCTV 내지는 홈카메라, SNS 등으로 스스로를 위장하거나 지키며 살아가지만, 어떤 순간에는 그것들이 바로 텔레스크린처럼 우리의 모든 사생활과 마음 깊은 곳의 비밀까지도 들춰낸다는 사실에 경악하게 된다. 때론 한 개인의 모든 것이 여과 없이 세상 밖으로 공개돼, 당사자는 물론 우리까지도 타인의 속속들이 내면을 알게 되는 당황스러움에 직면하는 것이다. 몇 해 전에는 세계적인 검색엔진 사이트가 스마트폰을 통해 개인정보는 물론 위치까지도 추적하여 저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산 바 있다. 무엇보다 미디어매체나 뉴스, SNS, 각종 커뮤니티 등에서 매일같이 쏟아지는 소위 ‘타인의 생각’들에 둘러싸여있음을 생각할 때, 사실상 어떤 것이 진짜 내 생각인지 의심해볼만한 일이다.


『1984』의 윈스턴 또한 전혀 인간답지 못한 인간사회에 회의를 느낀다. 그 출발은 한 권의 노트다. 그는 아무도 모르게 노트에 일기를 적기 시작한다. 일기는 그 자체로서 범죄다. 개인의 감정이나 생각은 삭제되어야할 오류이자 사사로운 기록물은 사회를 위협하는 요소다.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윈스턴의 사회에 대한 반감은 더해진다. 이 반감은 남녀 간의 애정관계를 차단하려는 당에 대한 분노로 이어진다. 당은 철저한 교육과 세뇌를 통해 개인의 성욕과 쾌락을 삭제하고 있었다. 성욕은 오직 ‘아이 만드는 일’이며 그를 통한 ‘당에 대한 의무’일 뿐이라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성욕은 가장 근원적인 인간다움을 말살시키려는 당의 사회적 장치로 읽힌다. 인간이란 오직 사회의 부속품으로서 당에 모든 열정과 사랑을 바쳐야만 한다는 맹목적인 강요다.


그러던 윈스턴에게 줄리아라는 여성이 다가온다. 계속되는 우연한 만남을 감시로 의심한 윈스턴은 줄리아를 욕망하면서도 증오하는데, 어느 날 쪽지 하나를 받게 된다. 쪽지에는 멋없이 커다란 글씨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한 마디 말이 윈스턴의 전 생애를 뒤집고, 결코 없으리라 여겼던 이상적인 인간사회에 대한 욕망을 일깨웠음은 물론이다. 둘은 사랑에 빠진다. 당의 감시를 피해 은밀한 장소를 찾고 그곳에서 만큼은 당원이나 동지가 아니라 한 남자이고 여자이길 원한다. 그것은 태초부터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며, 가장 인간다운 일이다. 둘은 자신들과 생각이 같은 이들을 찾아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한다. 사랑은 두려움을 잊게 한다. 무모한 일도 도전하게 한다. 윈스턴은 당을 반대하는 지하단체인 형제단에 가담하게 되지만, 결국 사상경찰에 체포된다. 죽음은 차라리 사치스러운 것이다. 윈스턴은 선택할 수 없는 고문과 고통에 시달린다. 그럼에도 끝내 줄리아를 배신하지 않으려한다. 아니, 윈스턴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려한다. 부단히도 저항하며 스스로를 지키고 싶었다. 적어도 그 굳건한 의지만은 분명했다. 그러나 결국엔 윈스턴은 무너지고 만다. 그것은 자신도 어찌할 수 없이 맹렬하게 덮쳐오는 극한의 공포감 때문이었다. 그는 빈껍데기가 되어, 텔레스크린의 마지막 외침인 “너희들은 죽은 사람이다”, 그 자체로 남는다.


그럼에도 윈스턴과 줄리아의 “계란으로 바위치기”식의 항거를(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 무의미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감정과 생각을 삭제당하고 기억마저 조작되는 통제 속에서, 무던히도 ‘나’를 지키고 ‘감정’을 되뇌며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건 기적에 가깝다. 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범주에서 노력했던 것이다. ‘나’라는 이름을 위해…….


슬프게도, 아주 슬프게도, 이 사회는 어쩌면 청년들에게 그 가장 인간다운 모습, 가장 나다운 모습을 포기하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일의 어떤 영광을 위해, 또 성공한 삶을 위해 오늘의 기쁨과 감정을 억누르고 인내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건대, 오늘만큼 중요한 내일은 없으며, 이 순간 느끼는 감정만큼 귀한 것도 없을 것이다.


부디 청년들이 먼 미래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만큼이나 스스로의 감정과 개성을 소중히 여겨주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한 마디 말은, 어떤 미래의 시간 속에서도 우리가 왜 인간(人間)인가를 보여주는 아주 결정적 증거다. 설령 2999년이란 어마어마한 미래의 시간이 오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무쪼록 청춘의 분주함 속에서도 그 한 마디 말을 누군가에게 꼭 던질 수 있기를, 응원해본다.

김소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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